뉴라이트의 정체성
어떤 나라의 어느 민족이든 역사에 따른 제대로 정립된 정체성과 가치관이 있어야 그 나라의 국민, 민족답게 살아갈 수 있다.
1987년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했다.
또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할 것과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할 것을 적시했다.
이는 한국 국민이 일제와 독재세력에 맞선 항거,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뜻을 지향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뉴라이트는 일제강점기와 이승만 독재 정권을 미화하고 민주주의를 부정하며 반북 대결로 전쟁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 국민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려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뉴라이트의 정체성은 숭일·혐한·반북·숭미로 정의할 수 있다.
숭일
뉴라이트 성향 인사들은 일본을 숭상하는 ‘숭일 사상’이 뚜렷한데 이를 보여주는 대표 논리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현대 한국의 경제적·정치적 성장의 원동력을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 찾는 역사적 관점”이라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의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인사들은 일제의 식민 통치가 합법적이었다고 긍정하면서, 일제강점기 당시 나라가 없었기에 ‘조선 민족’이라는 정체성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항일독립운동을 자주적 근대화의 기본 동력으로 보며 일제에 항거한 민족의 주체성을 중심에 둔 내재적 발전론을 부정하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역사학이 아닌 경제학을 전공한 경제학자 출신으로, 자본주의(돈)와 약육강식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는 특징이 있다.
1987년 서울대 교수 출신인 안병직은 낙성대경제연구소를 만들어 식민지 근대화론을 퍼뜨렸고, 여기에 학계의 변절자들이 가세했다.
안병직은 일제가 군함 운요호를 끌고 강화도로 들어와 조선의 여러 항구를 강제로 열게 한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이 ‘개방’됐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개방이란 일제가 쇄국 정책으로 닫혀 있던 조선을 개방시켜 조선 경제를 서구 중심 자본주의에 편입시켰다는 긍정적 시각이다.
안병직은 강화도조약 이후 일제는 조선에 자본주의를 이식하려 했으나 “조선 정부의 저항”으로 개항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고, 이후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한일합방)로 개방성이 높아지면서 조선이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안병직의 제자인 이영훈은 “(일제강점기) 근대적 제도의 정비에 따라 식민지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라고 주장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일제가 조선에 이식한 자본주의가 한국의 해방 이후 산업화에도 도움을 줬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모두 궤변인데,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시켜 조선 민족을 잘 살게 해줬다는 논리 자체가 거짓이기 때문이다.
애초 일제는 중국을 침략하려 중간 길목인 한반도에 철도와 도로를 놓아 조선의 곡물과 물자를 수탈했다.
일제의 수탈은 태평양전쟁 시기인 1940년대 들어 전쟁 물자를 조달하고자 우리 민족에게서 숟가락과 놋그릇까지 빼앗는 등 더욱 극에 달했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허수열 충남대 명예교수(경제학자)는 “일제강점기에 그렇게 많은 개발이 이루어졌다면, 해방 후 한국이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식민지 근대화론은) ‘불편한 허구’에 불과하다”라고 했다.(「식민지 근대화론은 ‘불편한 진실’ 아닌 ‘불편한 허구’다」, 한겨레, 2019.10.19.)
뉴라이트는 서구 열강의 식민 침탈 역시 긍정하는데, 뉴라이트의 시각에서는 ‘조선처럼 뒤떨어진 아프리카 각국’에 발전한 서구 열강이 자본주의를 이식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서구 열강의 식민 통치를 받은 아프리카 각국 국민 대다수는 지금까지도 서구 열강이 이식한 정치, 경제 체제의 부작용으로 열악한 삶을 살고 있다.
이를 봐도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난다.
혐한
뉴라이트의 숭일 논리는 곧 우리 민족을 비하하는 혐한으로 이어진다.
2015년 10월 2일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현행 한국사 교과서가 이른바 ‘자학 사관’에 빠졌다며 교과서 개정을 요구했다. 여당 대표가 대놓고 친일매국 뉴라이트의 역사관을 긍정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컸다.
김무성 대표는 “역사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의미에서 자학의 역사관, 부정의 역사관은 절대 피해야 한다. 저는 그런 측면에서 우리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굴욕의 역사’라고 억지를 부리는 주장은 이 땅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본래 자학 사관이란 1995년 8월 15일, 사회당 출신인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반성하는 내용의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하자 일본 극우세력이 반발하며 쓰기 시작한 용어다.
여기에는 일본 극우세력의 시각에서 일본의 진보·좌파진영이 ‘일제 시기 식민 통치의 성과’를 부정하는 자학(자기 학대)을 하고 있으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한국의 뉴라이트세력은 일본 극우세력의 자학 사관을 한국의 상황에 적용해 식민지 근대화론을 합리화하려 시도해 왔다.
뉴라이트는 일제가 이식한 자본주의와 식민 통치에 협력한 인사들 덕에 식민지 조선이 발전의 기틀을 다졌으며, 이 때문에 해방 뒤 한국이 경제 성장과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영훈은 2006년 7월 31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에서 “광복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광복은 일제가 무리하게 제국의 판도를 확장하다가 미국과 충돌하여 미국에 의해 제국이 깨어지는 통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이승만이 정권을 잡은 1948년 8월 15일 비로소 건국됐다고 했다.
2019년 이영훈 등이 펴낸 책 『반일 종족주의』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조선에서 식량을 수탈하지 않았고, 징용과 일본군‘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으며, 독도가 원래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 또한 없다는 주장이 담겼다.
이러한 주장은 일제에 항거해 우리 선조들이 벌인 독립운동과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이후 독립군과 광복군 등이 만주에서 벌인 무장투쟁 등 민족항쟁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건국절을 두둔하는 뉴라이트의 주장에 누리꾼들은 “사실 뉴라이트야말로 자학 사관 아닌가. 자국의 역사적 정당성이나 장점을 다 깎아먹는 방식으로 역사왜곡(을 하고 있으니까)”, “뉴라이트라 쓰고 왜라이트, 재팬라이트라 읽는다”, “해방 이래 친일파가 활개 치는 세상이라니...”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뉴라이트야말로 자학 사관의 극단”이라며 “뉴라이트진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 성장과 물질적인 풍요를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위에 놓는다는 점이다.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에 대한 폄훼(貶毁)도 이들이 저지르는 대표적 오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뉴라이트 지식인들은 ‘우리 힘으로는 근대화도, 경제 성장도, 자유민주주의도 불가능했다, 일제가, 미국이, 이승만이, 박정희가 경제 성장과 자유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다’고 굳게 믿으며 우리 민족의 주체적 역량 더 나아가 인간이 지닌 주체성을 철저히 불신한다”라고 지적했다. (「뉴라이트, 얼치기 사회진화론과 유물론의 기괴한 결합」, NEWSM, 2024.9.14.)
뉴라이트 인사들은 국민 사이에서 토착왜구라고 비난받아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한국과 우리 민족을 경멸하는 목소리를 높인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 2021년 7월 31일, 온라인에서 ‘제8회 일본연구상’ 시상식이 열렸다.
시상식은 일본 극우세력이 일제에 항거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부정하는 한국 뉴라이트 인사들에게 상을 줬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일본의 극우 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기본문제연구소(이하 국기연)가 일제의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범죄를 부정하는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황의원 미디어워치 대표에게 특별상과 상금을 전달했다.
국기연은 이들에게 일본 극우세력의 시각에서 일본군‘위안부’의 실체가 자발적인 ‘합법적 성매매’였다는 궤변을 알린 공로로 상을 줬다.
그런데도 황의원 미디어워치 대표는 MBC ‘PD수첩’ 제작진에게 “(국기연의) 사쿠라이 이사장께서 직접 수여하셨다”라면서 극존칭을 쓰며 수상을 반겼다.
또 이우연과 황의원은 당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국기연을 통해 자신들에게 축전을 전해온 점을 특히 자랑스럽게 여겼다.
웹툰 작가인 윤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국은 미개하고 일본은 우월하다는 투의 ‘일본 찬양 글’을 수시로 올려 논란이 됐다.
특히 윤서인은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사는 집을 비교하는 사진을 올리며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한 걸까.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며 노골적으로 독립운동을 비하했다.
이러한 뉴라이트 인사들의 사고방식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일제 황국 신민’이라며 우쭐댄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인식과 그리 다르지 않은 듯하다.
반북
본래 진보와 통일을 지향했다가 뉴라이트로 돌아선 뉴라이트 인사들은 조선일보 등 수구 언론을 통해 이른바 ‘반성문’이란 걸 공개하며 변절을 선언했다.
그 내용인즉슨 북한 인권 상황에 관해 아무 말을 하지 않은 점을 반성하며, 앞으로 수구세력 편에서 흡수통일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뉴라이트는 ‘선진화된 조국 건설’을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겠다며 ▲북한의 정권 교체 및 민주화 ▲남한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방식의 흡수통일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뉴라이트 계열 단체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2004년 12월 ‘데일리NK’라는 언론을 만들어 정체불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근거도 없는 반북 보도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정권을 잡은 수구세력은 뉴라이트 인사들을 요직에 앉히며 대북 적대 정책을 이어갔다.
이명박 정권의 이른바 비핵·개방·3000, 박근혜 정권의 통일대박론, 윤석열 정권의 8.15 통일 독트린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해야 한다는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평화와 협력의 분위기는 사라졌고 전쟁과 대결 위기가 가시질 않고 있다.
숭미
앞의 글에서 뉴라이트가 미국 네오콘의 축소판이며 자유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적’을 가정한 호전적인 대결 정책 등 네오콘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지적했다. (☞[뉴라이트 해부] ① 뉴라이트의 탄생)
이러한 뉴라이트의 ‘숭미 사상’은 친일파가 미군정 덕에 살아남은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해방 직후 한반도 38선 이남을 점령한 미군정은 조선총독부 등 일제 기관 출신 친일파의 협력을 받아 38선 이남을 강압 통치했고 그 대가로 친일파들의 지위와 재산을 보장해 줬다.
뉴라이트가 국부로 떠받드는 이승만은 미군정과 친일파에 기대 통일을 바라는 민족의 염원을 저버리며 38선 이남에 단독 정부를 세웠고, 이는 한반도의 분단과 민족 대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김기협 역사학자는 2008년에 펴낸 책 『뉴라이트 비판』에서 뉴라이트가 미국의 뜻에 집착하며 이승만을 국부로 떠받들고 건국절을 과장하며 한반도의 남북 대결을 고착시켰다고 일갈했다.
고승우 한미일연구소 상임대표는 “뉴라이트들의 지적 배경은 해방 이후 온존된 친일세력과 맥이 닿아 있으며 해방 정국에서 친일세력들은 친미세력으로 변신해 미국을 새로운 주인으로 섬겼다”라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러면서 “뉴라이트의 가치관, 세계관의 중심이 제 조국이 아닌 외세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측면이 있다”라며 “해방 이후 심판받아 대가를 치러야 할 친일세력들이 기사회생의 기회를 베푼 미국, 그리고 해방 이전 일제의 비호를 받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고승우 상임대표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관해서도 “미국이 한국전쟁 기간 동안 2차 대전 참전 연합국과 협의해 1952년 공표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논의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만들어 유포한 논리였다”라면서 그 출발점을 미국으로 짚었다. (「[고승우 칼럼] 뉴라이트의 ‘일제 식민지배 기여론’ 첫 제조 유포자는 미국」, 폴리뉴스. 2024.8.7.)
이처럼 태생부터 미국과 밀접한 뉴라이트의 ‘사명’은 미국이 목표해 온 ‘한일관계 개선’을 통해 북·중·러에 맞서 군사 대결을 격화하는 한·미·일 삼각동맹 완성을 돕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뉴라이트가 요직을 차지한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권은 미국의 뜻을 따라 과거 ‘한일관계 개선’을 추진하며 한반도에서 전쟁 위기를 높이는 대결 정책을 고수해 왔다.
전쟁 위기가 격화하고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대다수 국민은 극심한 피해를 당하지만, 전쟁을 구실로 각종 무기를 생산하고 판매해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쓸어 담는 미국의 군산복합체 같은 극소수 세력도 있다.
과거 일제를 숭배했던 ‘선배 친일파들’처럼 뉴라이트도 미국을 철저히 따르며 한·미·일 군사동맹 완성을 통해 미국 군산복합체가 자신들에게 쥐여 줄 ‘떡고물’을 바라고 있을 듯하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지난 8월 16일 시민언론 민들레를 통해 뉴라이트의 숭미 사상에 관해 “광신적인 사대주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광신적 사대주의란 마치 광신도들이 사이비 교주를 정신병적으로 추앙하듯이 특정 국가를 맹목적으로 사대”한다며 “광신적 사대주의는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화로 인한 정신건강 악화, 미국 일극 패권 시대의 도래 같은 외적 충격으로 인한 극심한 공포와 정체성 혼란 등과 관련이 있다”라고 분석했다.
또 뉴라이트는 자신들 같은 소수 엘리트가 국가를 지배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를 옹호하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을 무시한다.
이를 볼 때 뉴라이트의 주장과 논리는 한국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는 ‘반민족·반민주주의·사대매국’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계속)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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