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소치에 있는 시리우스 과학기술대학에서 지난 11월 9~10일 이틀 동안 ‘제1차 러시아-아프리카 동반자 관계 포럼‘(포럼)이 열렸다. 러시아와 아프리카는 미국의 일방적 패권이 통하지 않는 새로운 “다극 세계 질서”를 주도할 ‘동반자 관계’를 지향하기로 했다.
이번 글에서는 포럼의 개최 배경과 의미, 공동성명 내용, 전망을 들여다본다.
포럼의 개최 배경과 의미
포럼은 지난 2023년 7월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진행된 제2차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나온 합의 사항을 구체화하고 실행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제2차 정상회의 당시 러시아와 아프리카 54개국은 74개 항목으로 된 ‘제2차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 1항에 러시아-아프리카 동반자 관계 포럼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그에 따라 처음으로 포럼이 열렸다.
앞서 러시아와 아프리카는 지난 2019년 처음으로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열었다. 이후 양측은 협력을 꾸준히 강화해 왔고 2023년 제2차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거쳐 올해 포럼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 열린 정상회의는 러시아와 아프리카가 합의를 통해 굵직한 의제와 목표를 하나로 모아내는 자리였다. 이와 비교하면 장관급 회의로 진행된 포럼은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방안 모색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포럼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장관이 주재했다. 아프리카 각국의 외무부장관과 차관 등 고위 관리 40여 명과 기업 대표 등으로 구성된 공식 대표단 1,500여 명이 포럼에 참석해 논의를 이어갔다.
논의 과정에서는 아프리카 대표단과 러시아 기업 간 50건이 넘는 계약과 120억 달러(약 16조 7,220억 원)에 이르는 무역 거래가 성사됐다고 한다.
막대한 경제 협력 약속과 더불어 러시아와 아프리카는 미국식 패권과는 결이 다른 평등한 세계 질서, 다극 체제를 준비하는 동반자로서 함께 나아가자는 의미를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환영사에서 “아프리카 국가들은 세계 무대에서 점점 더 권위를 키우고 있다. 건설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외교 정책을 추구하면서 국제 의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아프리카 동반자들과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특히 중요시하고 있다. 우리는 진정한 평등과 국제법의 우위에 기초한 정의로운 다극 세계 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단결돼 있으며 어떠한 형태의 차별, 억압, 제재 압력도 없다”라고 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장관은 “러시아와 아프리카는 이러한 목표가 평등, 상호 존중, 서로의 이익에 대한 배려의 원칙에 따라 함께 달성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단결하고 있다”라며 “우리가 창설한 새로운 협력 원리가 러시아-아프리카 관계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더욱 공정한 다극 세계 질서를 형성하며 지역 및 세계의 안정을 보장하는 데 기여”할 것을 다짐했다.
아프리카 각국은 러시아와의 동반자 관계가 과거 식민 침탈을 벌인 서방세력과의 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카라모코 장-마리 트라오레 부르키나파소 외무부장관은 러시아에 관해 “식민 지배국인 프랑스보다 더 적합한 국제 동반자”라고 평가했다.
압둘라에 디옵 말리 외무부장관은 “프랑스와는 달리 러시아의 동반자 관계는 진실된 것”이라며 말리와 러시아가 다양한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공동성명 도출
러시아와 아프리카 각국은 포럼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러시아와 아프리카는 공동성명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동등한 동반자 관계로서 발걸음을 맞추기로 했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경제 통합을 모색해 온 아프리카연합이 기존에 제시한 방안에 따른 협력 강화를 명시한 점이 눈에 띈다.
공동성명은 서문에서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구조, 지리적 위치, 인구통계학, 자원 및 군사적 잠재력의 차이와 관계없이 모든 국가의 발전을 위한 평등한 기회, 문화적, 문명적 고유성을 보존하는 국제질서를 보장하는 세계 질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적 차원의 관여를 지속할 의도를 재확인한다”라고 밝혔다.
계속해 “각국의 주권적 평등, 내정 불간섭, 주권, 영토 보전 및 모든 국민의 자결권에 대한 존중의 원칙에 기초한 공정하고 안정적인 세계 질서의 창설을 지지하는 러시아 연방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공동 책임을 재확인한다”라면서 “러시아-아프리카 동반자 관계 포럼 내에서 대화와 관여를 강화한다는 상호 약속에 바탕을 두고, 양국의 공통 이익과 상호 이익에 기반하여 러시아-아프리카 관계의 모든 분야에서 행동을 더욱 조율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밝힌다”라고 했다.
러시아와 아프리카 54개국은 공동성명에서 ▲정치 협력 ▲안보 협력 ▲무역 및 경제 협력 ▲교육, 건강, 문화, 스포츠, 청소년 정책 및 미디어 연계 ▲환경 및 기후 협력 등 방대한 분야에서 협력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중요 방안을 꼽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정치 협력에서는 “국제법 및 국내법의 규범, 아프리카연합의 아젠다(과제) 2063 ‘우리가 원하는 아프리카’ 및 기타 전략 문서에 기초하여 러시아 연방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가 주권 강화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우리의 공약을 재확인하며, 국가의 주권 평등 원칙을 존중하는 국가들의 주도적인 참여로 다자간 형식을 개발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확인한다”라고 했다.
또 “우리는 아프리카연합 및 주요 아프리카 통합 기구와의 건설적인 동반자 관계 발전을 러시아 연방 및 아프리카 국가의 외교 정책 우선순위로 간주한다”라고 명시했다.
계속해 “공정한 국제질서와 모든 국가의 평등에 기초한 공평하고 포용적인 국제관계 체제를 촉진하는 브릭스의 역할”과 “포용적 다자주의를 증진하고 평화와 안보를 수호하는 데 있어 유엔의 중심적 역할”을 강조하며 아프리카 국가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했다.
러시아와 아프리카는 “주권국가와 국민의 자원을 착취하는 신식민주의, 폭력적, 비폭력적 형태의 어떠한 징후에 맞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우리의 공약을 재확인한다”라면서 “우리는 유엔의 지도력 하에, 그리고 유엔 헌장의 조항에 따라 아프리카 대륙의 진정한 탈식민지화 과정을 완료하기 위한 노력을 지지한다”라고 했다.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를 이행하기 위한 공동 대책으로는 ▲식민지 시대의 범죄와 그 여파에 대한 역사적 기억을 보존하는 국가 기록 보관소 공동 작업 ▲아프리카 각국이 식민 침탈당한 과정에 대한 보상, 강탈된 문화재 반환을 위한 조치와 법적 자료 구축 및 누구나 볼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조직 설립을 목표로 삼았다.
안보 협력에서는 “평등하고 불가분한 안보의 불가침성에 기초하여 국가 내 및 국가 간 분쟁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국제 평화 및 안보 구조를 검토하고 강화하기 위한 집단적 노력과 포괄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략적 안정, 군축, 군비 통제,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 수단의 비확산을 유지하기 위한 국제 정책 틀을 강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재확인한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각국의 주권적 평등과 내정 불간섭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공평한 국제 정보 안보 체제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라고 명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정보통신 분야에서의 분쟁을 예방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며, 정보통신기술이 범죄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고 대응하기 위한 보편적 법적 틀의 개발 지지 ▲정보통신 분야에서 책임 있는 국가 행동을 위해 합의된 자발적 규칙, 규범 및 원칙을 이행할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계속해 “분쟁 해결에서 ‘아프리카 문제에 대한 아프리카의 해결책’ 원칙의 중요성을 확인한다. 우리는 분쟁 상황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협력할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이행하는 데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테러와 극단주의와의 전쟁, 환경 문제, 식량 및 정보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조율하는 한편, 평화, 안정 및 안보에 기여할 러시아-아프리카 상설 최고위급 대화 메커니즘을 구축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재확인한다”라고 했다.
무역 및 경제 협력에서는 “러시아 연방과 아프리카 대륙 국가 간의 무역 및 금융 거래에서 국가 화폐 사용을 확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미국과 서방진영의 대규모 제재를 받는 러시아는 브릭스 회원국인 중국, 인도, 브라질 등과 자국 화폐로 거래를 확대했다. 앞으로 러시아와 아프리카는 경제 협력 과정에서 이러한 방식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또 “우리는 러시아 연방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상호 이익이 되는 경제 발전을 위해 효과적인 새로운 국제 운송 회랑을 조성하고 기존 회랑을 보존하기 위한 보다 긴밀한 접근 방식을 도입할 필요성을 강조한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러시아는 시베리아 동쪽지역에서 튀르키예와 이집트를 거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남쪽 케이프타운까지 향하는 운송 회랑을 모색하고 있다. 이 운송 회랑은 총 2만 2,387킬로미터에 이르는데, 현실화한다면 국제 사회의 물류 질서를 바꾸게 될듯하다.
전망
러시아와 아프리카 간 협력 방안이 실행되면 국제 사회에 상당한 파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와 아프리카는 앞으로 포럼을 주기적으로 개최하기로 약속했다. 또 러시아-아프리카 의회 간 협력을 강조하며 ‘국제의회 정례회의’를 열겠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와 아프리카가 국제 사회의 동반자로서 정치,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강하게 추진할 의지를 담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안톤 코뱌코프 러시아 대통령 고문은 포럼에 참석해 “우리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과 무역, 경제, 과학기술 협력에 관한 양자 정부 간 위원회를 설립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와 아프리카는 위원회를 통해 협력 사항을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아프리카 간 ‘지금까지 없던 협력’이 국제질서의 격변기 속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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