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상한 일들
(1) 은수미 성남시장 재판
지난 2월 6일 은수미 경기도 성남시장이 2심 선고재판에서 300만 원 벌금형을 받았다. 만약 상고심에서 뒤집지 못하면 은 시장은 당선 무효가 된다. 이 재판 결과가 주목받은 이유는 1심 선고 90만 원의 3배 이상이나 되는 벌금을 선고받은데다가, 검찰 구형 150만 원보다도 두 배 많은 매우 이례적인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재판은 엄벌을 주장하는 검사와, 무죄 혹은 선처를 주장하는 피고 사이에서 판결이 나오기 때문에 검사 구형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게다가 1심 선고에서 무죄가 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지 않는 이상 1심 판결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경우도 별로 없다. 은 시장의 경우 1심과 2심 모두 동일한 논리로 동일하게 유죄 판결을 했음에도 1심 형량보다 높고 검사 구형보다도 훨씬 높은 형량을 받았기에 이번 선고 결과는 매우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은 한 사업가가 차량과 운전사를 자원봉사로 제공해주겠다고 해서 은 시장이 받아들였다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은 사건이다. 2심 판사는 재판 내내 은 시장을 공격했으며 1심 판결과 동일한 판단을 해놓고도 은 시장이 ‘반성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이른바 ‘괘씸죄’가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은 시장은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에 반성할 이유가 없었다. 혐의를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하는 경우와 달리 법리 다툼을 하는 상황이라 반성하는 게 오히려 모순이다. 결국 판사의 ‘반성하지 않았으므로 엄벌한다’는 논리는 ‘내가 유죄라면 유죄지 어디서 건방지게 무죄를 주장하느냐’는 소리나 다름없다.
물론 유죄, 무죄를 따지는 법리 해석은 판사의 재량이다. 따라서 은 시장을 유죄로 판결하는 것은 판사가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피고가 자신과 다른 법해석을 한다는 이유로 통상의 범위를 넘은 비상식적인 형량을 선고하는 것은 ‘감정’이 섞인 결과로 볼 수 있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하였지 자존심을 앞세워 판결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처럼 비상식적인 형량이 나온 게 단순히 판사의 ‘자존심’ 때문만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형량이 지나치게 높다.
은 시장 변호인은 재판 후 “재판부가 법률적 평가를 넘어 정치적 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정치적 견해 차이로 편파적 판결을 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진중권 전 동양대교수의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진 전 교수는 은 시장을 두고 “조국과 함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조직원이었다”고 비난했다. 실제로 은 시장은 사노맹 사건으로 1992년 구속돼 6년간 복역했으며, 지난해 조국 전 장관이 사노맹 출신이라는 이유로 공격받자 “사노맹에 더 이상 무례하게 굴지 말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물론 판사의 본심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드러난 정보만 놓고 보면 은 시장이 과거 사회주의자였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과도한 판결을 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적폐세력이 보기에 조국 전 장관이나 은 시장 등 사회주의라는 금기를 건드린 인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30여 년 전의 경력이 지금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법률로 규정된 행위만 처벌할 수 있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어기는 것이다. 게다가 과거 운동권이었어도 자유한국당으로 간 정치인들은 이런 ‘괘씸죄’에 걸리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법이 지배하는 법치주의 국가다. 하지만 과연 진짜 법치주의 국가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2)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재판
지난 1월 17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 의원 딸의 KT 특혜채용 의혹 사건이었다. 재판부는 특혜채용은 사실이지만 뇌물수수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지만 재판부가 아닌 검찰이 문제라는 지적도 많았다.
재판 과정에서 서유열 전 KT 사장은 김 의원에게 딸의 이력서를 직접 받았다고 증언했다. 김 의원은 이석채 전 KT 회장과 저녁 식사 자리를 잡아달라고도 요청했다. 또 김 의원 딸도 자신이 특혜를 받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무죄가 나온 이유는 검찰이 김 의원을 업무방해죄가 아닌 뇌물죄로 기소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부정채용은 업무방해죄로 기소한다. 그래서 검찰이 뇌물죄로 기소할 때 법조계에서는 “채용비리 사건을 뇌물 수수로 기소한 일은 거의 없다. 업무방해 혐의를 못 찾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하지만 이석채 전 회장이 이미 부정채용과 관련해 업무방해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김 의원 역시 업무방해로 기소했으면 유죄가 확실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검찰은 재판에 성실히 임하지도 않았다. 서유열 전 사장이 증언까지 다 했는데도 검찰이 다른 증거를 제출하지 않아 뇌물 혐의를 입증하지 않은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사가 제출한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 합리적 증명이 어렵다”면서 검찰의 부실수사, 무성의 재판을 지적했다.
이처럼 검찰은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 봐주기 수사, 봐주기 기소로 일관해 무죄를 받게 만들었다. 기소를 안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같은 편’을 유죄 받게 할 수도 없으니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한 것 아니냐고 충분히 여길 만하다. 이 때문에 1심 재판이 끝나고 일부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을 감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1심 재판을 두고 “음주운전 한 사람을 속도위반 혐의로 기소해 무죄판결을 유도한 사기극”이라고 규탄했다.
(3) 김기현 비리 사건 관련 보도
동아일보가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며 정국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이른바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은 사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비리사건에서 출발한다. 지역권력과 토착비리세력, 검찰이 유착된 비리사건이 어느 순간 청와대의 ‘범죄’로 둔갑한 것이다.
김기현 비리사건과 관련해 뉴스타파는 지난해 12월 27일 사건의 실체를 밝힐 중요한 내용이 담긴 검찰관계자 음성파일을 공개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울산 건설업자 김흥태 씨가 김기현 전 시장을 비리사건으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수사를 철저히 외면했고 거꾸로 다수의 김흥태 씨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김 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할 것을 종용했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검찰은 끝내 김 씨를 구속했으며 그 틈에 김기현 비리사건을 무혐의로 처리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다뤘던 울산지검 핵심 실무자는 서울중앙지검에 파견돼 이른바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팀에서 일하였다. 다시 말해 울산 지역권력, 토착비리세력과 결탁한 검찰이 자신의 부정비리를 숨기기 위해 청와대에 죄를 덮어씌웠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사실을 언론은 철저히 외면했다. 뉴스타파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오로지 청와대의 ‘선거개입’이니 ‘하명수사’니 하는 것에만 매달린다. 언론이 철저히 비리세력과 검찰의 편에 서서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
2. 완전히 훼손된 대한민국의 근간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국민주권을 명시했다. 또 헌법 전반에서 법치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국민주권과 법치주의는 대한민국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국민주권은 대외주권과 대내주권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대내주권은 국민의 의사가 국가 정책에 잘 반영되게 하고 국가적 차원으로 잘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대외주권은 국가의 징표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해리스 주한미대사의 망발과 이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대처 등 심각한 문제들이 있지만 다음 기회에 살펴보고자 한다.) 또 법치주의란 법에 의해 국가가 운영되고 누구나 법을 지켜야 하며,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은 정의로워야 하고, 인권을 보장해야 하고, 공정해야만 한다.
그런데 은수미, 김성태, 김기현 등 3명에 대한 사건들을 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근간이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대내 국민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검찰, 사법부, 언론이 한통속이 돼서 국민 여론을 완전히 왜곡시킨다. 왜곡의 방향은 진보민주개혁세력을 범죄자로 몰고 무력하게 만들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친미친일보수적폐세력을 보호하고 그들이 공세를 펼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이처럼 국민 여론을 왜곡시키고 있기에 국민의 의사가 국가 정책에 반영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다음으로, 법치주의가 완전히 파괴되고 있다.
검찰과 사법부는 법 적용을 대단히 편파적으로 하고 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은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적용할 수 없다.
진보민주개혁세력에는 가혹한 법적용이 이루어진다. 조국 전 장관 자택 압수수색은 무려 11시간을 진행했으며 조국 일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만 70회 이상 발부되었다. 투입된 검찰 인력도 역대급이었다. 청와대 압수수색도 마찬가지다. ‘범죄 자료 일체’로 명시해 압수 대상을 특정하지 않은 영장을 발부하여 마음껏 압수수색할 수 있도록 하거나 검찰이 법원 영장에도 없는 ‘압수물 목록’을 제시하기도 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등 적폐세력에는 한 없이 관대하다. 나경원 의원은 고발만 10건이나 있지만 아직도 수사하지 않고 있다. 국회선진화법 위반 혐의(이른바 ‘패스트트랙 사건’)를 받는 자유한국당 의원에 대해서도 검찰은 ‘범죄는 저질렀지만 당사자도 다쳤으므로 기소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입장을 내놨다. 이 기사를 본 국민들은 ‘범죄하다 걸리면 자해해야겠네’라며 검찰을 비꼬았다.
국회의사당 집회도 마찬가지다. 2019년 12월 16일 자유한국당과 우리공화당 지지자들이 국회에 불법 진입해 국회의원과 경찰을 폭행하는 등 헌법기관을 유린하는 난동을 부렸지만 단 한 명밖에 연행되지 않았고 아무도 구속되지 않았다. 반면 같은 해 3월 말, 4월 초 국회 인근에서 집회를 하다가 진입을 시도, 경찰 안전펜스를 훼손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수십 명이 현장에서 체포됐고 3명이 구속됐으며 나중에 민주노총 위원장까지 구속됐다.
이처럼 친미친일보수적폐세력에 대해서는 조사도 제대로 안 하고, 기소도 안 하고, 재판을 해도 김성태 의원처럼 법의 허점을 이용해 무죄를 받게 해준다. 언론은 이런 걸 철저히 은폐한다. 이렇게 법치주의 근간이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대내 국민주권과 법치주의가 완전히 훼손되고 거꾸로 가는 대한민국은 도대체 나라다운 나라로 볼 수가 없다.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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