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과 한국에서 나온 대북대화 몸짓
최근 미국과 한국이 북한에 대화를 원하는 모양새를 연속 보여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30일 유럽연합(EU)과 화상으로 정상회담을 하면서 미셸 EU 상임의장에게 “미국의 대선 전에 북미 간 대화 노력을 더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북미 대화란 북미정상회담을 의미하는 것이며 문 대통령의 뜻을 백악관도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7월 3일에는 외교안보라인을 대거 교체했다. 국정원장에 박지원 전 의원,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서훈 국정원장, 통일부장관에 이인영 의원, 외교안보특보에 정의용, 임종석 전 실장을 내정했다. 언론은 대체로 파격적 인사, 남북대화 국면을 열기 위한 최강의 인사로 평했다. MBC 뉴스는 7월 4일 보도에서 청와대 핵심관계자를 인용해 “6·15, 4·27, 9·19 등 남북 간 역사적 합의를 이끌었던, 경륜과 추진력을 가진 인물을 중용했다”, “교착 국면에 있는 북한 문제를 풀겠다는 문 대통령의 ‘대북한 승부수’”라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은 3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애초 문 대통령 발언이 알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가 “지금과 미 대선 사이에 아마도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지 않다”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을 정도로 미국 내 분위기는 부정적이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3차 북미정상회담 발언이 나온 뒤 갑자기 여기저기서 기대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대통령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느낀다면 김정은 위원장과의 또 다른 회담을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로 여길지 모른다”며 ‘10월 깜짝 이벤트’ 가능성을 언급했다. 또한 대선 전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도 이야기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도 “트럼프 대통령의 특성을 고려할 때 10월의 서프라이즈를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의 영변 폐쇄와 일부 대북제재 해제를 교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였다.
해리 카지아니스 국익연구소 한국담당 국장은 “지난주 동안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일관된 수준의 소문이 있었다, 정확히 어디에서 소문이 나오는지 알기 어렵지만 정상회담이 아주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충분한 얘기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대신 미국이 대북제재의 약 30%를 해제하되 북한이 약속을 어기면 원상 복귀하는 스냅백 조항을 넣는 방식의 합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분위기를 보고 국내에서도 3차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을 점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미가 대화해서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는데 해보지도 않고 운운해선 안 된다”라고 하였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대선 전에 만날 수 있다. 트럼프와 다시 한 번 북미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7일 비건 부장관이 방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 내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을 위해 물밑 접촉을 하려는 목적이라는 주장과 한미워킹그룹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지난 1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비건 부장관이 이르면 7월 초 방한해 한국 정부의 중개로 판문점에서 북한과 접촉을 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비건 부장관 본인은 “외교의 문을 계속 열어 둔다면 미국과 북한엔 여전히 양측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시간이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한미 정부와 주변에서 나오는 현상들은 대체로 북한과 대화를 하자는 데 목적을 둔 것 같은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과연 한미 당국은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2. 7월 4일 공세를 막아라
7월 4일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이 날은 미국의 대표적인 연방 공휴일로 미국인들이 독립의 기쁨을 만끽하는 날이자 우리의 광복절과 비슷한, 미국에게는 매우 의미 깊은 날이다. 그런데 북한과 연계를 지으면 미국에게 이 날은 떠올리기 싫은 악몽의 날, 재앙의 날이다.
2006년 7월 5일, 미국 시각으로 7월 4일 독립기념일이었던 이날 북한은 단거리부터 장거리까지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 일곱 발을 오전 3시 32분부터 오후 5시 22분까지 발사하였다. 2009년에도 오전과 오후에 걸쳐 단거리미사일 일곱 발을 발사했다. 2017년에는 독립기념일 하루 전날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을 발사해 미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북한은 이를 7·4혁명이라 불렀다. 한마디로 미국 당국자들에게 독립기념일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악몽과도 같은 날인 것이다.
올해는 북한이 미국을 향해 ‘새로운 길’을 가겠다, ‘정면돌파전’을 하겠다고 선언한데다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마저 폭파된 상황이었기에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미국 당국자들은 무척 긴장하고 있었을 것이다. 북한이 만약 독립기념일에 맞춰 자신들이 선언했던 ‘충격적인 실제행동’을 하거나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하거나 한다면 미국은 몹시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어떻게든 북한의 ‘독립기념일 군사공세’를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뭔가 대화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 게 아닌가 추정해볼 수 있다. 미국이 대화를 할 것처럼, 대화 준비가 된 것처럼 언행을 보이면 북한이 ‘혹시나’ 하고 공세를 늦출 수도 있고, 국제 사회가 대화를 기대하도록 만들어서 북한이 공세를 하기 부담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군사공세를 늦출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한편 최근 회고록 출간으로 이슈가 된 볼턴의 발언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방해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왜 3차 북미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처럼 힘을 실어 주었을까?
잠시 지난해 미국 정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트럼프-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돌아보자.
전직 미국 부통령이자 올해 대통령 선거 출마를 목표로 한 조 바이든의 차남인 헌터 바이든은 2014~2019년 우크라이나의 천연 가스 회사인 부리스마 홀딩스의 이사를 역임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검찰이 이 회사를 수사하자 2016년 바이든 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검찰총장 해임을 요구했고 실제로 검찰총장이 사임했다. 누가 봐도 석연찮은 상황이다.
이후 2019년 7월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회담 과정에서 바이든 부자의 우크라이나 행적을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군사원조를 대가로 제시했다. 그리고 한 달 후 회담 내용이 내부 고발로 폭로됐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직권 남용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을 비판하였고 급기야 9월 24일 하원은 트럼프 탄핵 조사에 착수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를 거꾸러뜨릴 절호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에서 바이든 부자를 언급한 것을 인정하며 문제를 키웠다. 탄핵을 추진하는 의회 지도부를 향해서도 ‘반역죄’, ‘쿠데타’를 운운하며 싸움을 걸었다. 마치 논란이 확대되기를 바라는 모습처럼 보였다.
결국 공세를 펼치던 민주당이 꼬리를 내렸다. 논란이 커질수록 오히려 바이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트럼프는 재선의 최대 경쟁자인 바이든의 약점을 거머쥐게 됐다. 트럼프 캠프는 이번 대선에 “헌터 어디 갔니?”(Where is Hunter?)를 유행어로 꺼내들었다. 논란을 피해 LA 자택에서 두문불출하는 헌터 바이든을 조롱하는 말이다. 바이든 입장에서 아들 헌터는 대선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된 셈이다.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해 함정에 빠뜨린다거나,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손자병법 11번째 계책인 이도대강을 펼치는 등 트럼프는 정치술수에 능한 인물이다. 막말 정치인 이미지 뒤에 노련한 정치공작 능력을 숨겨놓은 것이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볼턴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나리오를 써보자면 다음과 같다. 볼턴에게 10월 깜짝 이벤트가 준비되고 있다는 정보를 흘린다. 볼턴은 대선 변수를 막기 위해 이를 미리 폭로해버린다. 트럼프 재선을 반대하는 볼턴까지도 10월 이벤트를 언급하는 걸 보면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사람들이 믿게 된다. 트럼프를 공격하려던 볼턴이 오히려 트럼프를 위해 움직여준 꼴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움직임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번에 외교안보 인사는 문재인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역량을 최강 수준에서 최대로 끌어 모은 것이다. 특히 정부여당 인사가 아닌 박지원 전 의원 기용은 놀라운 수준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것을 ‘국사 중의 제일 국사’로 여긴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미국과 별도로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신호일까? 일단 이번 6.25전쟁 70주년 기념사의 내용을 보면 그럴 것 같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침햇살84] 문재인 대통령의 6·25전쟁 70주년 기념사 분석」 참조.) 새로 내정한 인사들 면면을 봐도 미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인물들이다.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미국에 철저히 의존하는, ‘승인’ 받고 움직이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인사는 미국과 교감 아래 진행했을 것이다. 미국은 ‘독립기념일 군사공세’를 막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빨리 추진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미국이 긴장하고 있다.
3. 지금 형국은 누가 주도하나
북한이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폭파했지만 미국은 의외로 조용한 모습이다. 한국 정부도 북한을 강하게 규탄했지만 얼마 안 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북한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하겠다며 호들갑을 떤다. 어찌 보면 미래통합당의 모습이 원래 한미 당국이 취할법한 모습이다.
연락사무소 폭파라는 게 그냥 별 일 아니라는 듯 넘어갈 사안은 아니다. 누군가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한미 당국은 자기 책임이라고 하지도 않고 사죄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북한에 책임을 묻고 배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지금 모습은 연락사무소 폭파는 그냥 뭉개고 넘어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화를 추진하는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한미 당국이 굉장히 전전긍긍 노심초사하면서 북한의 다음 공세를 막는 데 초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볼턴 회고록에 나온 작년 6월 30일 판문점 3자 회동을 살펴보자.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정전위원회 등을 통해 북한에 정상 만남을 제안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당시 청와대 발표를 보면 6월 29일 저녁 8시 청와대 만찬에 들어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측에서 연락받은 것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다, 연락을 받았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볼턴 회고록에 따르면 만찬 도중 트럼프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의 연락을 못 받았다고 토로했고 문 대통령은 만찬 직후 윤건영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판문점으로 급파하였다고 한다. 북한과 접촉해 판문점 회동을 성사시키라는 게 문 대통령의 지시였다. 윤 실장과 행정관 1명은 판문점에서 밤새 머물렀고 다음날 오전에야 북한의 회신을 받아 간신히 3자 회동을 성사할 수 있었다.
이걸 보면 당시에도 트럼프와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 회동을 간절히 원했고 전전긍긍 노심초사 하면서 북한이 긍정적인 답을 해주길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반면 볼턴의 묘사에 따르면 북한의 형세는 배짱과 여유에 기초한 아량을 베푸는 듯한 형세였다.
지금도 비슷하다. 한미 당국은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전전긍긍하며 그래도 대화를 원하니 추가 군사공세를 자제해달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이번에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를 보면 “우리와 판을 새롭게 짤 용단을 내릴 의지도 없는 미국이 어떤 잔꾀를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겠는가 하는 것은 구태여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 “우리는 이미 미국의 장기적인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구체적인 전략적 계산표를 짜놓고 있다”, “조미(북미)대화를 저들의 정치적 위기를 다루어나가기 위한 도구로밖에 여기지 않는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라며 배짱과 여유를 보이고 있다.
나아가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비건이 방한하는 7일에 맞춰 담화를 내고 “다시 한 번 명백히 하는데 우리는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또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제 코도 못 씻고 남의 코부터 씻어줄 걱정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가관”이라면서 “때를 모르고 잠꼬대 같은 소리만 하고 있으니 북남관계만 더더욱 망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전반 상황을 통해서 볼 때 2018년, 2019년 연이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의 배경도 유추해볼 수 있다. 한편에서는 미국의 대북압박과 한미동맹의 힘으로 북한을 대화에 끌어냈다는 견해를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이 대범하고 아량 있는 조치로 대화가 성사됐다는 견해를 보인다. 지금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성 있다고 유추해볼 수 있는 형국이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미국의 압박과 한미동맹의 힘으로 북한을 끌어냈다면 지금 북한이 전전긍긍 노심초사해야 하며 한미가 배짱과 여유를 부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4. 향후 전망
한미 양국에서 나오는 ‘대화 제스처’는 실제 대화를 하자는 것일 수도 있고 북한을 속이기 위한 사기일 수도 있다.
이를 가르는 세 가지 기준이 있다. 바로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 4.27 판문점 선언, 9월 평양선언이다. 모두 북미, 남북 정상이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에 기초해 실천을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가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도 풀 수 있다. 이 세 가지 합의를 벗어나 다른 합의를 하자며 대화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먼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새로운 약속을 하는 건 굉장히 소모적인 방식이다. 게다가 가장 기초적이고 선차적인 내용이 세 가지 합의에 다 있기 때문에 이것 말고 또 이야기할 게 있을까 싶다.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는 실천은 없고 대화만 추진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되는 건 없는데 자꾸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이제 답답하다. 진짜 국익을 위해서라면 새로운 약속을 할 게 아니라 이미 한 약속을 지키고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 언제까지 실천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낼 것인가.
그렇다면 제일 중요하고 시급한 실천 과제는 무엇일까?
북한은 이미 자신들이 하겠다고 한 것을 다 했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중단하고 핵실험장을 폭파했으며 미군유해를 송환했다. 이에 따라 한미 양국도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가장 급선무는 한미연합훈련 중단, 첨단무기 반입 중단, 대북전단 문제 해결이다. 대북전단의 경우 책임자를 문책하고 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한미연합훈련 중단, 첨단무기 반입 중단, 대북전단 중단 등 3가지는 지금 실천해야 할 1차 관문이 될 것이다. 1차 관문이라는 뜻은 이것을 하지 않으면 분명 파국으로 갈 것이지만, 이걸 하면 파국으로 가는 걸 어느 정도 막고 관계를 개선하는 길로 접어들 여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이 3가지가 한미 당국이 실천해야 할 전체가 아니라 가장 초보적인 과제라는 뜻도 있다. 이 3가지를 하면 북한도 그간 자신들의 조치와 균형을 맞췄다고 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대화를 마련하지 않을까 싶다.
과연 미국과 문재인 정부는 3가지 실천을 할까?
지금껏 보여준 태도를 보면 아마 실천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 며칠 전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이 9.19 남북군사합의를 겨냥해 훈련을 제대로 못해 군사준비태세에 타격을 받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실전적인 연합 실사격 훈련이 필요한데 훈련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첨예한 상황에서도 이런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문제가 있다. 미국은 계속 군사적 패권을 추구하고 무기를 팔아먹어야 한다는 입장이고 문재인 정부는 미국을 철저히 숭배하는 입장이다. 그러니 북한과의 합의를 이행할 생각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보여주는 ‘대화 제스처’는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할 생각은 없으면서 뭔가 준비되고 있는 것처럼 안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이 대화 가능성을 기대하게 만들어 다음 군사조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일 수 있다. 대화할 생각이 없으면서 할 것처럼 하는 것은 사기다.
미국은 다른 나라를 대할 때 이런 사기 수법을 즐겨 사용하였다. 리비아에도 핵을 포기하면 경제혜택을 주겠다고 사기를 쳤다. 이라크 후세인에게도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 에이프릴 글래스피가 “부시 행정부는 아랍 국가들 사이의 분쟁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견을 갖고 있지 않다.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국경 분쟁도 그렇다”라고 대통령 훈시를 전달했다. 이 말을 믿은 후세인은 쿠웨이트를 침공했고 미국은 다국적군을 꾸려 이라크를 공격했다.
이처럼 미국은 다른 나라에 종종 사기를 쳤기에 이번에도 또 사기를 치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북미 대결과 협상을 해온 북한이 여기에 넘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번에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미 당국이 실천에 나설 가능성은 없을까?
7월 초 언론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한미연합훈련을 취소하는 방안을 한미 군 당국이 고려한다는 보도를 내놨다. 이에 미래통합당 외교안보특별위원회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미연합훈련 강행을 촉구했다. 코로나19가 극성이던 상반기에도 이러저러한 명칭으로 각종 훈련을 했고, 불과 며칠 전에도 미일 두 나라는 공군연합훈련을 하였다. 이제 와서 코로나19 때문에 훈련을 취소한다는 건 핑계일 뿐 북한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한미 당국이 북한의 눈치를 보는 조건에서 만약 북한이 강력한 군사공세에 나서거나 나설 징후가 나타나면 미국 입장에서는 차라리 위 3가지를 실천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앞으로 사태 전개는 북한이 얼마나 강력한 압박을 취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 16일 미국은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된 B-52H 전략폭격기를 전부 미국 본토로 철수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태평양과 동해, 남중국해로 B-52H, B-1B 등 전략폭격기가 계속 날아들고 있다. 즉, 미국 입장에서는 전략폭격기 운용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일단 괌에서는 철수 혹은 최소한 철수했다고 발표라도 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는 뜻이다. 아마 북한의 압박이 비공개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번에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또 부산하게 움직인 것을 보면 지금도 뭔가 상당한 무게감을 가진 대결이 북미 사이에 펼쳐지고 있는 것 아닌가 추정하게 한다. 아마도 북한이 미국에 모종의 강력한 압박을 가하는 형국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자주시보와 주권연구소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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