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정찰위성 사진을 직접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각종 군사 대응책을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 정찰위성은 북한이 다른 수단으로 정찰하기 힘든 한국 남부와 한반도 인근 정찰에 주효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 본토나 하와이, 괌 등과 달리 한반도 인근은 정찰위성이 곧바로 북한에 정보를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정찰위성 1개만으로도 실시간 정찰이 가능하다. 반대로 미국 본토는 정찰위성이 지나간 후 북한 상공을 지날 때나 촬영한 자료를 전송할 수 있어 한 시간 이상 시차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문제는 향후 정찰위성을 몇 개 더 쏘아 올려 정찰위성끼리 자료를 전송하면 해결된다.
한국군은 물론 주한미군, 주일미군, 일본 자위대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면 군사 대응도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특히 공군의 움직임은 레이더로도 포착할 수 있지만 멀리서 항공모함이 접근하거나 전차 부대가 기동하는 등 해군, 육군의 움직임은 레이더 포착이 어려워 정찰위성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도 북한은 한·미·일의 군사적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지만 앞으로는 정찰위성 자료를 토대로 더욱 정밀한 맞춤형 대응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정찰위성으로 한국 지형, 지물을 자세히 파악해 순항미사일 경로를 설정할 수도 있다. 순항미사일은 저공비행을 하므로 산이나 언덕, 고층 건물의 위치를 미리 정확히 파악해야 하며 대공 기지의 위치도 확인해 이를 피하는 경로를 미리 설정해야 한다. 따라서 정찰위성은 북한의 순항미사일 활용 능력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빠른 실패 극복
북한은 5월 31일, 8월 24일 두 차례 실패 끝에 11월 21일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원래 인공위성 발사는 우주 선진국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어려움이 따른다. 따라서 어느 나라나 여러 차례의 실패를 딛고 성공에 이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대하는 태도다.
한국 최초의 우주로켓 나로호의 사례를 보자.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2002년 나로호 개발에 착수해 2009년 8월 25일 1차 발사, 2010년 6월 10일 2차 발사를 연거푸 실패한 다음 2013년 1월 30일 3차 발사에서 성공했다. 실패 후 다음 발사까지 간격이 상당히 큰데 특히 2차 발사와 3차 발사 사이에 2년 반이나 걸린 게 눈에 띈다.
이 기간이 길어진 원인은 개발 기관이 바뀐 것 때문으로 보인다. 2차 발사 실패 후 교육과학기술부는 책임을 물어 이주진 항우연 원장을 2011년 2월 사퇴시켰다. 그리고 항우연 자체 개발을 중단시키고 항우연 내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단이라는 외부 독립기관을 설치, 국방과학연구소 박사를 본부장에 앉히고 과기부가 직접 운영하면서 항우연의 개입을 차단했다. 이렇게 항우연 소속이지만 항우연의 운영 밖에 개발 기관이 있는 괴상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기형적 구조는 2022년 항우연 조직 개편 과정에서 로켓 분야 전문가들이 집단으로 보직 사퇴를 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관련 과학자들 속에서는 “로켓 발사는 기술자들이 주체가 돼서 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행정가와 얽혀 누가 주체인지 모르겠다”, “관에서 주도해 일방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과학자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라는 불만이 나왔다. (「“나로호 국민세금 5천억원, 반성과 성찰 필요”」, 헬로디디, 2010.6.13.)
이처럼 정부가 과학기술자들이 실패를 딛고 개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기보다는 정치 논리를 앞세우다 보니 개발이 지체되었다.
게다가 1단 로켓은 러시아가, 2단 로켓은 한국이 개발했는데 한러 공동조사단은 실패 원인을 합의하지 못하고 서로 상대 로켓의 문제라고 주장하고는 원인 규명을 종료해 버렸다. 이 역시 실패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책임 소재, 계약 이행 문제 등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적당히 덮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나로호는 2차 발사 실패 원인을 찾지 못한 채 3차 발사를 해서 성공한 셈이다.
북한이 두 차례 실패를 어떻게 대했는지도 살펴보자.
1차 실패 후 조선중앙통신은 “국가우주개발국은 위성 발사에서 나타난 엄중한 결함을 구체적으로 조사 해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학기술적 대책을 시급히 강구”할 것이라고 하여 결함이 ‘엄중’하다고 하였다. 또 6월 중순에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열어 “가장 엄중한 결함은 지난 5월 31일 군사정찰위성 발사에서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담당 간부들을 향해 강한 비판을 하였다.
과거 북한이 미사일이나 인공위성 발사에 실패했을 때에 비하면 상당히 강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해당 간부가 징계받거나 해임되었다는 보도는 없었다. 비판은 하되 계속 믿고 맡긴 것으로 보인다. 이런 모습은 과거 미사일 개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2016년 6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은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서 수차례나 실패를 거듭했다면서 “실패에 위축되고 주눅이 들세라 더 큰 사랑과 믿음을 주시고 진할(다할) 줄 모르는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시며 성공에로 이끌어주신 원수님(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고 보도하였다.
이에 관해 6월 29일 사와다 가쓰미(澤田克己) 일본 마이니치신문 전 서울지국장은 「실패해도 격려하는 김정은 위원장, 북한붕괴론은 현실성 없다」는 글을 통해 “최고위가 직접 시찰하는 중대한 프로젝트에서 2개월 사이에 4회 연속 실패했지만 그 조직의 책임자가 경질되거나 하지 않았다”라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상당한 수완가인지도 모른다”라고 평가했다.
7월 7일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도 동아일보 칼럼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과학기술자들이 주눅 들지 않고 책임 추궁을 당할 걱정 없이 성공할 때까지 연구개발에 몰두할 풍토를 만들어주는 것이 북한의 가장 큰 힘”이라면서 실패하면 여론의 몰매를 맞고 예산과 인력이 삭감되는 우리 풍토와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정찰위성 2차 실패 후에는 국가우주개발국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하면서 곧 3차 발사를 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이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북한은 실패를 엄벌하기보다 믿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북한이 정찰위성 실패의 책임을 물어 관계자를 엄벌했다는 식의 무책임한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6월 1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북한 발사체 관계자에겐 ‘죽느냐 사느냐’ 생사가 걸려있어 최대한 빨리 재발사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병철부터 시작해서 과학자들은 아마 지금 초주검이 됐을 것”, “몇 사람은 그야말로 아오지 탄광으로 가든지 생명까지 잃을지도 모른다”라고 하였다.
북한에 관해 일반인보다 많이 알 것 같은 전직 통일부 장관마저 이런 한심한 이야기를 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일단 북한에는 ‘아오지 탄광’이란 명칭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1960년대에 이미 ‘6.13탄광’으로 개칭했으며 ‘아오지’라는 지명도 사라졌다. 6.13탄광은 북한 내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탄광으로 유명했는데 지금은 탄이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전직 통일부 장관이면 이런 정도의 상식은 있을 것이다. 다만 북한을 적대하고 악마화하는 데 습관이 되어있다 보니 저런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을 적대하고 비하하면 기분은 좋을지 몰라도 며칠 지나면 거짓말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상대를 얕잡아보면 대북 정책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아오지’ 타령이야 개인의 자유지만 그런 식의 분석은 언제나 실패를 동반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역대 한국 정부는 누가 집권하든 항상 북한을 악마로 대하고 얕잡아 보며 잘못된 대북 정책을 펼치다 출발부터 남북관계를 잘못된 방향으로 몰고 간다.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평가에서 주의할 점
한국은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낙후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체제라고 평가한다. 외부의 원조가 없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정찰위성을 발사한 것을 보면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는 최첨단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상당한 능력, 국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은 「[개벽예감 564] 만리경-1호 정찰위성과 익명의 상설집행부서」(자주시보, 2023.12.4.)에서 위성 발사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미국도 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킬 때마다 어려움을 겪는데 일단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은 뒤 자세를 잡아 정상적으로 작동하기까지 4~6개월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북한은 이번에 정찰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으면서 동시에 자세를 잡을 수 있도록 하여 단 10일 만에 정상 작동을 시켜 “세상이 놀랄 만한 경이로운 기술력을 과시”했다고 하였다.
실제로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의 비확산 전문가 제프리 루이스 박사는 “러시아가 공급하기로 합의한 어떤 지원도 북한이 (발사에) 결합하기에는 너무 시간적으로 이르다”라고 평가했다. ‘오픈 뉴클리어 네트워크’(오스트리아)의 티안랜 수 연구원도 러시아의 지원이 있었더라도 북한이 이를 취하기에는 너무 이르기 때문에 다음 발사에나 적용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도 북한이 그 기간 내에 러시아 기술이나 하드웨어 지원을 받아 인공위성을 재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로켓 전문가인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이춘근 박사도 “부품 교체, 소프트웨어 개선, 시스템 통합, 시험 가동 등은 일반적으로 빠르게 진행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국정원, 코끼리 다리 만졌나?…北위성 분석 도마」, 노컷뉴스, 2023.11.23.)
이처럼 북한이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으로 첨단 기술을 개발한 것을 보면 북한이 낙후한 나라, 후진적인 나라라는 인식이 과연 맞는지 심각하게 검토해야 하겠다.
오히려 우리가 북한에 뒤처지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은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한 지 십여 일 지난 12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반덴버그 우주군기지에서 정찰위성 1호기를 발사했다. 발사체는 미국 스페이스X(엑스)의 팰콘 9였다. 아직 한국의 발사체 기술로는 정찰위성을 올릴 수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북한에 비해 발사체 기술은 뒤처지지만 인공위성 기술은 앞서며 세계 6~7위권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인공위성 기술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없으므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인공위성 기술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 독자 개발이 아닌 인공위성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거나 협력하여 얻은 기술이다.
예를 들어 인공위성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고해상도 카메라의 경우 다목적 실용위성 아리랑위성 3호에 처음으로 해상도가 1미터 아래인 미터 이하급 고해상도 카메라를 탑재했는데 이 기술은 항우연이 유럽과 협력하여 개발했다. 특히 국내에서는 설계, 조립, 시험만 하였고 부품은 대부분 수입했다. 아리랑위성 3A에 탑재한 적외선 장비의 경우도 적외선 검출기 등 일부 구성품을 해외 기술협력으로 개발했다. 또 아리랑위성 5호의 경우 국내 최초로 합성개구레이더(SAR)를 탑재했는데 주요 핵심 기술이 없어 해외 기술협력 방식으로 개발했다.
항우연은 개발 중인 아리랑위성 6호의 경우 시스템 설계, 본체 개발, 총조립과 시험을 국내 독자 개발로 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주요 장비를 모두 해외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특히 합성개구레이더의 경우 해외 업체에서 기술 자문과 핵심 장비를 지원받는다고 하였다. 위성에 탑재하는 주요 장비 개발은 아리랑위성 7호부터 적용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반사경 등 일부 핵심 부품의 경우 여전히 수입에 의존할 예정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독자 개발이 아닌 해외 의존으로 인공위성 기술을 축적하였다. 인공위성뿐 아니라 대부분의 산업에서 기술이나 핵심 소재, 부품, 장비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이 자랑하는 반도체 산업도 네덜란드 ASML의 장비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며 감광제 등 핵심 소재 역시 일본에 80~90% 이상 의존한다. 즉, ‘메이드 인 코리아’라고 해도 결국 기술, 소재, 부품, 장비를 상당 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어 진정한 ‘한국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이처럼 한국은 국제 협력이란 이름으로 해외에 의존해 가며 기술 개발을 했지만 철저히 독자 개발을 한 북한에 비해 정찰위성 개발, 발사에서 뒤처졌다. 이제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그간의 인식을 재고해야 하며 그에 따라 대북 정책을 새롭게 수립해야 한다.
(계속)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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