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실상 알리기’에 비상이 걸렸다
김영호 통일부장관은 지난 2월 6일 열린 2024 정책자문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올해 통일부는 북한 실상 알리기에 조직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통일부가 4억여 원을 들여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유튜브 채널을 신설하는 것도 이 일환이라고 합니다.
통일부 주요 업무를 ‘남북 대화 협력’에서 ‘북한 실상 알리기’로 전환하라고 지시한 윤석열 대통령의 기조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통일부의 ‘북한 실상 알리기’는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사업이 아니라 반북 여론 작업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 2월 7일(현지 시각)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노예처럼 착취당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방송은 ‘관리자들이 성과가 좋지 않은 직원을 상대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따귀를 때리거나 피가 날 때까지 구타’한다거나, ‘성과가 좋은 노동자들을 북한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여종업원을 골라 밤을 보내게 했다’는 식의 매우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설을 앞둔 2월 8일 국내 여러 언론사가 이 내용을 받아서 보도했습니다.
북한 관련 뉴스는 출처가 중요합니다.
BBC가 밝힌 정보의 출처는 현재 중국 동북지방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한다는 북한 노동자 정 씨가 고영환 통일부장관 특별보좌역과 주고받은 이메일입니다.
물론 북한 노동자의 신분은 확인할 수 없으며 대북 정보의 특성상 이메일 내용의 진위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이메일이라는 수단 자체가 익명성이 보장되기에 함부로 신뢰할 수 없습니다.
방송에서 확실히 드러난 것은 고영환 특보인데 정황상 고영환이 BBC에 정보를 제공해 기사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영환은 북한 외교관 출신 첫 탈북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1991년 탈북해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연구원이 되어 2016년에는 부원장까지 승진했습니다.
TV조선이나 자유아시아방송 같은 극우반북 매체에 단골 패널로 나와 반북 선전에 앞장서 온 인물을 통일부 특보로 임명한 걸 보면 통일부가 무엇을 하려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국내 관계자가 외국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면 외국 언론이 이를 보도하고, 그것을 다시 국내 언론사가 받아쓰는 방법은 기사의 출처, 진위를 모호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여론 공작 수법입니다.
이것을 통일부 당국자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여론 공작은 고영환이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통일부, 나아가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왜 이와 같은 여론 공작까지 하면서 ‘북한 실상 알리기’ 사업에 주력하고 있을까요?
현재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위기가 매우 높습니다.
자칫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전쟁이라는 최악의 순간을 대비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전쟁 대비에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식 속에 적을 미워하여 싸우고 싶은 마음, 적개심을 높이는 것입니다.
적개심을 높여야 전쟁의 명분이 생깁니다.
그래서 사전 작업으로 적을 악마화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북한 악마화가 국민들 사이에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1994년 3월 19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 교환 실무접촉에서 북한 대표가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하자 많은 국민이 반감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 시정연설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한다는 강력한 발언을 했어도 사람들 속에서 북한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국민 인식 변화는 윤석열 정부와 미국 등에게 까무러칠 정도로 이상하고 놀라울 것입니다.
이에 따라 북한 악마화를 위한 ‘북한 실상 알리기’ 사업에 비상이 걸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 악마화’ 난항의 세 가지 요인
그렇다면 왜 북한 악마화가 잘 안되는 것일까요?
북한에 관한 국민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의 원인은 세 가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김정은 국무위원장입니다.
북한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나라입니다.
북한을 악마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지도자에게 화살을 집중해야 하며 실제 그래왔습니다.
그런데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국민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18년 4월 30일 KBS 9시 뉴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는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라는 답변이 80.0%로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같은 날 MBC 여론조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동이나 발언에 신뢰가 가느냐는 질문에 ‘신뢰가 간다’는 응답이 77.5%로 나왔습니다.
당시 KBS는 「파격·솔직·대담 ‘김정은 스타일’」이라고 뉴스 제목을 뽑았고, MBC는 「김정은 스타일 ‘대담, 솔직, 예의, 긴장’」이란 제목의 보도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 보니까 유머 감각이 있었고요. 또 여유로웠으며, 솔직했습니다”라고 묘사하였습니다.
우리 국민이 우리나라 언론을 통하여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보자 이전의 부정적 인식이 완전히 깨진 것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관한 세계 정상들의 평가도 매우 호의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관해 “터프(tough)하고 영리(smart)하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타임지 인터뷰에서 “매우 솔직하고, 의욕적이며 강한 결단력을 보여줬다”, “국제적인 감각도 있다”라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평가했습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할 때 ‘전략적 지각’을 하기로 유명한데 지난해 북러정상회담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맞이하기 위해 30분 먼저 나와 기다릴 정도로 환대했습니다.
이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과 세계 정상들의 평가가 북한에 관한 국민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북한 사회에 대한 체제 우월감이 낮아졌습니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모두 가진 ‘전략국가’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 다양한 종류의 전략·전술 핵무기를 대량 생산하고 대륙간 탄도미사일도 화성포-17형, 화성포-18형까지 고도화하였습니다.
또 지난해 11월 21일 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에도 성공하였습니다.
북한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제재를 받고 있고 중국, 러시아와도 관계가 틀어져 있었다는 것을 우리 국민은 다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북한은 단독으로 핵무기, 대륙간 탄도미사일, 정찰위성 등을 개발하고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 모든 곳과 교류하고 서로 도와주는 가운데서도 개발하지 못한 것들, 가장 첨단을 달리고 막강한 무기들을 북한은 단독으로 개발하여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연 한국이 북한보다 우월하다고 할 수 있나? 첨단무기, 첨단과학만큼은 북한이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것 아닌가? 아니, 세계 최고 아닌가? 그런 북한을 과연 후지다고 할 수 있나?’ 하는 인식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수 국민은 핵무기, 대륙간 탄도미사일, 정찰위성까지 가진 북한을 상대로 전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는 대결보다 평화공존을 생각하게 됩니다.
경제력에 관한 생각도 바뀌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까지 북한이 한국보다 더 잘 살아서 한국이 해외여행을 통제하였습니다.
1992년까지는 철저한 신원조사를 통과하고 반공교육 필증을 제출해야 여권을 발급받고 해외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사회주의 붕괴와 강력한 대북 제재로 남북 경제가 역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23년 한국은 중국, 러시아 등과 경제 관계가 악화하면서 1.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였고 북한은 지난 3년간 연평균 12%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수치로만 비교하기 어려우나 남한 경제는 침체 하강 국면에 들어섰고 북한 경제는 고도성장에 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과거처럼 북한의 실상을 차단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북한의 실상이 인터넷, 사진 등으로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체제 우월감이 점차 역전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 번째, 윤석열 대통령입니다.
많은 국민은 지금의 전쟁 위기가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윤석열 정부 이전에는 이런 심각한 전쟁 위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윤 대통령은 ‘선제타격’, ‘2~3배 대응 원칙’을 외치고 미국과 일본을 끌어들여서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리고 2023년에만 280일 동안 한미연합훈련을 하는 등 이전 정부들의 몇 배가 넘는 한미연합훈련을 진행하였고 미국의 전략핵무기들이 한국에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이런 호전적인 행동이 한반도 전쟁 위기를 높였다는 것이 다수 국민의 평가입니다.
또, 윤 대통령이 주장하는 ‘힘에 의한 평화’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윤 대통령이 힘으로 북한을 제압했다면 국민은 윤 대통령의 주장을 인정했을 것이고 지지율은 고공 행진할 것입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신이 주장한 ‘선제타격’, ‘2~3배 대응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문제 해결도 못 하면서 벌집만 쑤셔 놓았네’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국민은 전쟁 위기의 원인을 북한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에게서 찾고 있는 것입니다.
또 북한에서 자기들 무력 강화의 특등 공신이 윤석열이라고 감사해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입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0월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개표 관리 시스템이 해킹에 취약해 북한이 언제든 침투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 전인 5월 4일에는 지난 2년 동안 북한이 8차례나 선관위 해킹 공격을 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국정원이 이런 중대한 문제를 두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고 본다면 지난해 기준으로 지난 2년 동안 가장 중요한 선거였던 2022년 대선에 북한이 개입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거 결과 윤 대통령이 0.7% 포인트 차이로 당선되었습니다.
국정원 말대로라면 북한이 선관위 해킹으로 윤석열을 대통령에 당선시켰고, 윤석열은 북한이 첨단 무기를 개발할 명분을 만들어주어 한국 국민이 북한을 비판하지 못하는 상황을 조성한 것으로 됩니다.
대단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거기다가 윤석열은 국민 심리를 북한에 대단히 유리하게 만들어 주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통일부가 하는 북한 악마화는 중국 현지 노동자 얘기처럼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윤석열이 만들어 주는 ‘한국 악마화’는 세계를 강타할 정도로 실체가 뚜렷하고 또 차고 넘칩니다.
세계 주요 언론들이 ‘영부인이 콜걸 출신이다’, ‘명품 가방을 뇌물로 받았다’, ‘한국판 마리 앙투아네트다’, ‘고속도로가 대통령 처가 때문에 휘어졌다’는 내용들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국격이 사정없이 추락하고 이 때문에 국민의 자존심도 무너집니다.
‘이게 나라냐’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사람들 속에서는 ‘검찰 개혁한다고 공수처를 만들었는데 그것도 허무맹랑하고, 더 이상 이 나라는 미래가 없으니 차라리 전쟁이나 일어나라, 어떻게 되어도 검찰독재보다는 낫겠지’ 하는 술자리 한탄도 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든 윤석열을 북한이 특등 공신이라며 추어주는 것이 정말 뭔가 실체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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