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중국과 필리핀 선박이 남중국해 세컨드 토마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 부근에서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관해 필리핀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 세컨드 토마스 암초 부근에서 보급 임무를 수행하던 자국 함정이 중국 해경선과 부딪혀 선체가 손상됐다”라며 “자국 병사 4명이 중국 함정이 쏜 물대포에 맞아 부상했다”라고 밝혔다.
지난 7일,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 사건에 관한 입장을 묻자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필리핀 선박이 충돌하고 필리핀 선박에 대해 중국의 물대포가 사용되면서 벌어진 위험한 상황에 대해 깊이 우려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상황은 선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며 남중국해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라며 “남중국해에서 평화와 안전, 규칙 기반 질서 유지 및 해당 수역에서 유엔해양법 협약을 포함한 국제법 원칙에 따른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지지한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미국 국무부는 5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필리핀의 합법적인 남중국해 해운 활동을 겨냥한 중국의 도발적 행동이 벌어진 뒤 우리의 동맹인 필리핀과 연대한다”라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도 지난 6일 중국과 필리핀 선박 간 충돌과 필리핀 병사 부상 등 상황에 우려를 표하며 “무력으로 현상을 변경하려는 일방적 시도와 남중국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동에 반대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일본이 주장한 ‘무력으로 현상을 변경하는 것에 반대’라는 말은 지난해 4월 윤석열 대통령이“무력으로 대만해협 현상 변경하는 데에 절대 반대한다”라고 했던 것과 같다.
한국과 일본의 외교적 수사가 일치하는 것이 우연일까.
중국과 필리핀 사이의 해상 마찰이 벌어진 직후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이 중국을 향해 필리핀 선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남중국해의 긴장을 고조시킨다고 지적하며 해당 수역에서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논평하면서 미국과 윤석열 정부는 ‘자유’를 거론하면서 중국을 비판했다.
중국뉴스통신(中新社) 기자가 3월 6일 중국 외교부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위험, 비법 행위에 직면하여 필리핀과 함께 할 것이며, 중국의 위험 행위를 중지하라는 발표를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떤 의견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관해 마오닝(毛宁) 대변인은 “런아이자오(仁爱礁)는 중국 난사군도의 일부이다. 중국은 런아이자오를 포함한 난사군도와 그 인접 해역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주권을 가지고 있다”라며 “이는 장기적인 역사적 과정에서 형성되고 확립되었으며, 우리는 유엔헌장을 준수하며 국제법을 준수하고 있다. 중국 해안경비대는 런아이자오에 대한 필리핀의 침해 및 도발에 대해 법에 따라 필요한 법 집행 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정당하고 적법하며, 절제되었으며, 비난할 여지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에서 누가 적극적으로 도발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가? 누가 국제법을 위반하고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가?”라며 “진실은 분명하다. 미 국무부는 사실을 무시하고 옳고 그름을 혼동하며 중국의 정당한 권리 보호 조치를 근거 없이 공격하고 비난하며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이행을 이유로 중국을 위협한다. 도발적인 행동에 대해 중국은 단호히 반대한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문제는 3월 12일 중국 외교부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번 거론됐다.
동방위성(东方卫视) 기자가 12일 왕원빈(汪文斌) 대변인에게 “지난 7일 한국 외교부 대변인이 밝힌 남중국해에서 발생한 중국의 필리핀 선박에 대한 고압 물대포 사용의 위험, 국제법 원칙의 항행과 비행의 자유에 대해 중국은 어떤 입장인가”라고 질문했다.
왕원빈(汪文斌) 대변인은 “우리는 한국 외교부 대변인의 관련 발언을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정중하게 우려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 필리핀 선박이 런아이자오에 불법 침입한 사건에 대해 중국이 사건을 소개하고 엄숙한 입장을 밝혔다”라며 “이번 사건의 원인은 필리핀이 약속을 위반하고 중국의 영토 주권과 해양 권익을 침해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중국은 법에 따라 필요한 통제 조치를 하고 자제했으며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행동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의 책임은 전적으로 필리핀에 있다. 한국은 남중국해 문제의 이해 당사국이 아니면서도, 최근 수년간 유지해 온 신중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바꿔 여러 차례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끼어들거나 중국에 대해 지적해 왔다”라면서 “우리는 재차 한국이 분위기에 휩싸여 일을 만들지 말고, 한중관계에 불필요한 부담을 증가시키는 것을 피하고, 한국 스스로 일을 잘 처리하기를 정중히 촉구한다”라고 강한 어조로 지적했다.
한국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7일 중국을 향해 비판한 지 일주일 만에 중국 외교부가 이례적으로 또다시 대응한 것이다.
이는 한국 외교부의 논평에 즉각 반응을 보인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하여 대응했다는 측면에서 무게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역대 정부 동안 한국 외교부는 실리적 한중관계를 고려해 우리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남중국해 이해 관련 신중한 입장을 지켜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과 일본의 이해에 부합하여 그들의 외교적 입장을 대변하는 의견을 밝혔다. 그것도 5일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당사국들은 서로 입장을 설명한 지 이틀 후인 7일 마치 뒷북 논평처럼 발표했다.
그리고 침묵 뒤에 중국의 외교부가 한국에 대한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사실상 외교관계를 단절할 만큼의 거친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한국 외교부는 더 이상 반박 대응을 하지 않아 외교 망신을 또 한 번 받은 셈이라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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