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회원들을 불법사찰 하다가 지난 22일 발각됐다. 그런데 국정원이 대진연뿐만 아니라 촛불행동 대표, 시민단체 회원, 농민, 민주당 지역 당직자 등을 가리지 않고 불법사찰 했다는 것이 국정원 조사관의 휴대전화를 통해 확인됐다. 이에 불법사찰의 문제점과 심각성, 그리고 인권 침해 등을 주제로 두 편의 특집 기사를 준비했다.
사찰 자체가 불법이다
일반적으로 정보기관이 민간인의 동태를 살피며 감시하는 것을 사찰이라고 한다.
국정원은 이번 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 ㄱ 씨의 ‘안보침해 범죄행위’를 추적한 것으로 불법이 아니라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정원이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한 것과 다르게 국정원 조사관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법을 어기고 있다고 인지한 듯하다.
국정원 조사관들이 ㄱ 씨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내용이 나온다.
“동영상은 대화 내용 때문에 그러는데 아직 ㄱ 씨는 녹음 근거가 없어요 ㅜㅜㅜ. 참고하세요.”
“00 과장님의 연락이 왔습니다. 아마 요지는 대화 내용이 들릴 땐 적절히 동영상을 찍어도 되지만, 현재 법적으로 녹음 근거가 없으니 주의해서 하라는 말인듯하여.”
또한 국정원 조사관들은 자신들의 불법사찰이 문제 될 것임을 의식한 듯한 행보를 보였다.
국정원이라는 신분을 숨긴 채 ㄱ 씨가 후배들을 만났던 한 카페의 CCTV를 확보하려 했던 정황이 있다.
“먼저 방식 관련 원(국정원을 의미) 직원이나 조사관 신분증을 제출해서 임의제출 받는 형식이 아니고 경찰 등 위장 신분으로 협조를 구하라고 하셨는데 실무적으로는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그리고 불법 사찰하다가 대학생들에게 발각된 국정원 조사관은 경찰에게 자신의 신분을 ‘헌병대’라고 속였다.
이런 국정원 조사관의 모습은 자신들의 행위가 불법이라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시행령에 따라 진행된 것으로 상위법인 국정원법을 어긴 것이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2024년 1월 1일부터 경찰로 이관됐다. 대공수사란 간첩이나 이른바 ‘좌익 사범’을 수사하는 것을 말한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은 2013년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이후 높아졌다. 국정원은 탈북자 유우성 씨를 국가보안법상 특수잠입·탈출 혐의 등으로 체포했는데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 등이 사건 자료를 조작했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법원은 2015년 유우성 씨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후 국회는 2020년 12월 본회의에서 ‘▲대공·대정부 전복 등 국내 보안정보 수집·작성·배포를 국정원 직무 범위에서 제외 ▲국정원이 가진 일체의 수사권 폐지 ▲수사권 폐지 3년 유예’를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은 지난해 12월 12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정원 소관 법령인 「안보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규정」 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위자(안보위해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추적할 수 있고, 안보위해자에 대한 행정 절차 및 사법 절차를 지원하기 위해 활동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해 당시에 국정원이 대공수사권 폐지를 무력화하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정원이 안보위해자로 판단하면 이와 관련해 수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꼼수로 만든 시행령으로 여전히 불법적으로 대공수사를 해왔다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확인됐다.
이외에도 국정원 또는 공안기관은 무슨 혐의인지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사찰하는 경우가 있었다.
안보수사단 직원이 국정원 조사관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었다.
“혹시 대상자 중 000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습니까?”
“갑자기 내용도 모르고 000으로 ㅋㅋ 미감(미행·감시로 추정됨) 나가라 해서 나와 있습니다.”
무슨 내용으로, 무슨 사건인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시키는 대로, 불법적으로 사찰하는 공안기관의 모습이다.
2012년 6월 4일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민간인 사찰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토론회에서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리 사실이 발견되면 감찰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일반인이 범죄행위를 저지르면 수사기관이 수사하면 된다”라며 “범죄행위가 일어나기도 전에 예방 차원에서 평상적으로 사람들을 감시하고 자료수집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찰은 불법사찰과 동의어이며, 적법 사찰 또는 합법 사찰이란 존재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국정원이 아무리 적법한 절차라고 주장해도 사찰은 ‘불법’일 뿐이다.
불법사찰의 목적은 간첩조작이다
공안기관의 불법사찰은 이른바 밀정을 단체에 넣어서 진행하기도 하고, 이번 경우처럼 공안기관이 직접 대상자를 감시하며 자료를 모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밀정이든, 직접 감시하는 방식이든 국정원은 취합한 자료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각색해 공안사건으로 만든다.
이번에 드러난 불법사찰 목적도 공안사건을 조작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확인됐다.
국정원은 ㄱ 씨가 후배들을 만나며 이야기하는 것을 ‘사상학습’으로 추정하면서 조직도를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ㄱ 씨가 후배들을 만났던 3월 8일, 3월 11일을 각각 ‘3.8회합’, ‘3.11회합’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국정원 간부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와 관련된 사진을 찾는다며 그 간부에게 사진을 전달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면서 “대진연 애들이 ㄱ과 접촉하는 것을 북 연계성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내용을 공유했다.
국정원이 불법사찰을 통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조작사건은 2013년 8월에 발생한, 이른바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사건’이다. 당시 국정원은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간부 10명이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집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했다.
이 사건은 국정원이 밀정을 통해 만들어낸 조작사건이었다. 국정원이 제시한 지하 혁명 조직의 실체는 없었고, 밀정을 통해 입수한 녹취록은 상당 부분 원본이 없거나 잘못 적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법원은 2015년 이석기 의원에게 내란음모죄 무죄판결을 했다.
혹자는 국정원이 없는 자료를 쓰겠느냐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보면 국정원이 중국의 공문서를 조작하는 등 ‘간첩’으로 몰아갈 자료를 위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례로 봤을 때 국정원은 간첩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정원이 ㄱ 씨를 불법사찰 한 것은 ㄱ 씨를 ‘간첩’으로 둔갑시키고 대진연을 북한과 연계시키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법사찰 대상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이번 불법사찰을 통해 사찰 대상자가 확대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정원은 ㄱ 씨 주변으로 사찰 대상자를 확대했다. ㄱ 씨와 남편, 아이를 기본적으로 사찰하고 있었고, 그 외에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담당하는 현장 팀을 운영할 계획이었다. 현장 팀은 사찰 대상자를 미행, 감시하면서 사진 등의 자료를 불법적으로 취합하는 단위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ㄱ 씨가 만나는 모든 사람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며 자료화하고 있었다. 특히 ㄱ 씨가 새로운 인물을 만나면 현장 팀은 그 사람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서, 사진을 국정원의 다른 조직으로 보냈다. 그러면 국정원의 다른 조직에서 얼마 뒤에 누구라고 특정했다. 특정하기 전, 즉 국정원이 파악한 자료에 없는 사람이면 미행을 했다.
국정원은 ㄱ 씨 이외에 시민단체 회원, 농민, 민주당의 지역 당직자, 사업가 등을 지속해서 불법사찰했다. 사찰 대상자가 만나는 사람들의 인적 사항과 움직임을 계속 주시했고, 사찰 대상으로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생활까지 사찰했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이 자신의 입맛에 따라 광범위한 사람들을 불법사찰해 왔으며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법을 무시하는 행위를 뻔뻔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저작권자 ⓒ 자주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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