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정조준86] 그렇게 당하고 또 적폐와 타협하자는 말이 나오나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4/07/18 [20:30]

[정조준86] 그렇게 당하고 또 적폐와 타협하자는 말이 나오나

문경환 기자 | 입력 : 2024/07/18 [20:30]

한동훈이 ‘날리면’ 당하지 않는 이유

 

국힘당 당대표 선거가 점입가경입니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한동훈 후보가 압도적 지지로 선두를 달리고 나머지 후보들이 한동훈을 ‘배신자’로 몰면서 견제하는 모양새입니다. 후보들뿐 아니라 국힘당의 주요 인사들도 모두 한동훈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동훈이 김건희와 서로 으르렁거리며 대립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적폐세력 내에서 윤석열·김건희 세력과 한동훈이 싸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윤석열·김건희가 왜 한동훈을 날리지 못하는지 이상합니다. 

 

지난 국힘당 당대표 선거 때를 돌아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자기가 점지한 김기현 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이준석, 안철수, 나경원 등을 무자비하게 날려버렸습니다. 

 

이준석은 당대표를 하면서 윤석열과 수시로 충돌했는데 2022년 7월 8일 징계를 때려서 쫓아냈습니다. 사실상 쿠데타를 한 셈인데 이준석은 소송까지 하면서 버텼지만 10월 7일 추가 징계까지 받아 결국 완전히 물러나야 했습니다. 나중에 윤석열은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체리 따봉’을 보내 쿠데타 성공을 치하했습니다. 

 

이준석이 날아간 뒤 나경원, 안철수 등이 당대표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대통령실은 먼저 나경원을 맹공격했습니다. 나경원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고 하자 윤석열이 사표 낼 틈도 안 주고 곧바로 해임해서 공개 망신을 주기도 했습니다. 국힘당 초선의원 50명이 나경원을 비난하는 성명까지 내자 결국 나경원은 고개를 숙이고 당대표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였습니다. 

 

나경원이 날아가자 시선은 안철수에게 쏠렸습니다. 일단 윤석열이 안철수를 향해 “국정 운영의 방해꾼이자 적”이라고 말한 사실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며 윤석열이 안철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안철수는 “1위 후보가 사퇴하는 거 보셨습니까?”라며 완주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의 집요한 공격에 밀려 끝내 당대표 선거에서 패배하였습니다. 

 

윤심을 안고 당대표가 된 김기현도 윤석열 눈 밖에 나자 하루아침에 날아갔습니다. 지난 총선 때 대통령실이 ‘당대표직은 유지하되 총선에는 불출마하라’는 지침을 전달했지만 김기현은 반대로 대표직을 내려놓고 총선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그러자 윤석열이 ‘격노’했고 결국 국회의원이 되기는 했지만 국힘당 지도부에서는 완전히 밀려났습니다. 

 

이처럼 윤석열·김건희에게 걸리면 누구든 한순간에 날아갑니다. 

 

그런데 한동훈은 총선 시기부터 몇 번이나 윤석열·김건희와 충돌했지만 아직도 건재합니다. 

 

왜일까요? 한동훈이 윤석열·김건희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에 김건희가 한동훈을 날리려고 문자를 하나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안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5개를 다 깠습니다. 그래도 안 날아갑니다. 그러면 더 센 걸 터뜨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댓글부대 의혹에 관한 결정적 증거를 흘린다거나, 세간에 돌고 있는 한동훈 딸 입시 비리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까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한동훈이 더 센 걸 깔까봐 못 하는 겁니다. 한동훈은 윤석열·김건희 밑에서 오랫동안 하수인 역할을 했고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장관까지 했기에 윤석열·김건희의 여러 약점을 들고 있을 것입니다. 이준석, 나경원, 안철수, 김기현은 이런 게 없었기 때문에 날아갔습니다. 

 

  © 대통령실


미국도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 쪽에 힘을 실어주지는 않습니다. 두 세력이 싸우는 모양새가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권 때 박근혜 의원이 ‘여당 속 야당’을 자처하며 싸웠던 것도 미국 처지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레 권력이 박근혜로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동훈은 지금 두 가지만 잘하면 성공합니다. 

 

첫째, ‘윤석열 똘마니’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이건 거의 성공한 것 같습니다. 최근 국힘당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지지자와 원희룡 지지자 사이에 몸싸움이 나고, 윤석열의 총애를 받는 장예찬과 한동훈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등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국힘당의 분열상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동훈이 ‘윤석열 똘마니’에서 탈피하는 과정으로도 됩니다. 

 

둘째, 실제 윤석열이 탄핵당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탈피만 해야지 탄핵까지 하면 한동훈이 아니라 이재명 의원으로 권력이 넘어갑니다. 최대한 윤석열 정권이 버티면서 권력이 유실되지 않고 고스란히 한동훈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한동훈이 윤석열·김건희를 죽일 카드를 더 안 까는 것에는 이런 취지도 있을 것입니다. 

 

적폐와 타협하자는 목소리

 

이런 상황에서 정성호, 정봉주, 조국, 김어준 등 유명 야권 인사들이 한동훈과 타협하자는 투의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정성호 의원은 한동훈이 제안한 채해병 특검법안을 두고 “받아들여도 좋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의미가 있고 진일보한 것”이라고 칭찬했습니다. 한동훈의 특검법안은 특검을 야당이 추천하지 않고 대법원장 같은 제3자가 추천하는 법안입니다. 말이 제3자일뿐 결국 윤석열 편을 들어줄 특검을 추천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런 특검으로는 아무것도 밝혀낼 수 없습니다. 

 

정봉주 민주당 최고위원 출마자는 “(채해병 사건에) 누가 관여했다고 하는 것은 어느 특검이 들어와도 밝혀내지 않을 수가 없다”라며 한동훈 특검법안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또 “적의 적은 동지”라면서 윤석열·김건희와 대립하는 한동훈과 손을 잡아야 하는 것처럼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친화력이 강점이라 최고위원이 되면 한동훈과 소통을 잘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여당을 설득하기 위해 채해병 특검 추천권을 양보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동훈이 제시한 ‘제3자 특검 추천’과 연결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방송인 김어준 씨는 원희룡 후보가 ‘김어준이 한동훈을 지지한다’라고 주장한 것을 두고 “(한동훈의) 당대표 선출을 지지한다. 공식적으로 밝히는바”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국힘당 당대표 선거 과정에 자기 이름이 거론되자 농담 식으로 던진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실제로 한동훈이 당대표를 하는 게 민주개혁세력에 유리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한동훈 지지’는 어느 정도 진심이 담긴 말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논리는 ‘우리의 주적은 윤석열·김건희다. 그런데 지금 한동훈이 윤석열·김건희와 대립하니 한동훈과 일시적으로 손을 잡으면 윤석열·김건희를 더 강하게 공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적의 적은 동지’라는, 다분히 정치공학적 판단입니다. 

 

특히 한동훈의 특검안을 고려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야권 내에 상당히 퍼져있는 듯합니다. 1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한 민주당 당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 ‘특검을 제3자가 추천하는 안을 고려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이재명 후보만 유일하게 X 팻말을 들어 거부했고 김두관, 김지수 후보는 모두 O 팻말을 들었습니다. 

 

▲ 특검을 제3자가 추천하는 한동훈식 특검안을 고려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에 답하는 민주당 대표 후보들.  © CBS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 때 적폐세력과 협상하고 타협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게 한두 번이 아닌데도 또 이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요?

 

예전에 이재명 의원은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배운 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착해서 상대진영도 나처럼 인간이겠거니 하며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어설픈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라고 했습니다. 민주개혁진영의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되새기는 걸 보면 대체로 이런 생각에 공감하는 듯합니다. 이걸 보면 뭔가 중요한 교훈을 배운 것 같은데도 현실은 또 아닙니다. 

 

이 의원의 표현은 그냥 보면 맞는 말 같은데 자세히 보면 한계가 있습니다. ‘너무 착해서’ 적폐세력을 ‘인간’으로 믿은 건 노무현 전 대통령만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 민주개혁진영의 많은 이들이 그런 자세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돌아보는 게 없습니다. 그냥 ‘너무 착해서’라고 평가합니다. 자신의 어떤 관점이 잘못이었는지 정확한 원인 분석과 반성이 없습니다. 그게 없으니 문제가 반복되는 것 아닐까요? 

 

정봉주 후보는 보수 궤멸이 아니라 보수 재편성을 하도록 해서 살길을 열어주자고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야권 정치인이 꽤 있습니다. 지금 민심과 정반대입니다. 지금 민심은 적폐세력을 아예 궤멸하자는 것입니다. 

 

야권 정치인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배경에는 ‘정치는 국민이 아닌 정치인이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있습니다. 정치는 자기들이 하는 것이고 국힘당과의 싸움도 자기들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민을 믿지 않고 자꾸 정치공학적으로, 잔머리 굴려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국민을 믿지 않으니 적폐를 궤멸할 자신이 없는 것이지요. 

 

적폐와 협상하면 결과는

 

야당 내 유력 인사들이 이런 분위기니 한동훈은 자기가 제시한 특검안이 대세가 됐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한동훈은 16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제가 낸 대안으로 인해서 판이 바뀌었다”라고 자평했습니다. 

 

이제 민주당과 국힘당 대표 선출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채해병 특검안에 관한 협상을 진행할 것입니다. 야권 내 일부는 이미 한동훈 특검안을 기본 협상안으로 받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전체 흐름이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협상 결과는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첫째는 한동훈 특검안으로 합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윤석열이 임명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특검을 추천할 것이고 특검은 아무것도 밝히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나버릴 것입니다. 과거 BBK 특검도 대법원장이 추천한 특검으로 진행했지만 이명박에게 면죄부만 주고 끝난 역사가 있습니다. 

 

둘째는 협상이 결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야당이 추진했던 특검법 재의결도 국힘당의 거부로 실패할 것입니다. 그런데 야권 내에 한동훈 특검안 찬성파와 반대파가 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내분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결과적으로 한동훈에게 유리합니다. 채해병 특검 정국을 주도한 한동훈은 적폐세력 내에서 정권 위기를 무사히 넘기게 한 영웅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차기 대선도 한동훈 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민주당과 이재명 의원은 엄청난 욕을 먹게 됩니다. 우원식 의원이 국회의장이 됐을 때도 당 안팎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민주당 탈당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윤석열 탄핵을 바라는 수많은 국민이 패배감에 빠질 것입니다. 

 

지금 미국은 이런 그림을 그려놓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조국 의원과 정봉주 후보는 무슨 생각을 할지도 궁금합니다. 자기들이 잘못 판단했다고 반성할까요? 어쩔 수 없었다고 체념할까요? 어쩌면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재명 의원이 욕먹으면 자기들이 차기 대권을 쥘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설마 그렇지는 않기를 바라지만 사실 야권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꽤 많을 것입니다. 

 

예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안희정 씨를 “내 동지이자 동업자”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도 안희정 씨를 소개할 때 ‘노무현의 정치적 동업자’라는 수식어를 많이 붙였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겪은 일, 지금 민주당의 현실을 보면 실제 정치인들은 ‘동지’보다 ‘동업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보입니다. 

 

동업자는 이익을 나누기 위해 협력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희생해 가며 상대를 돕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상대가 잘못되는 게 자기에게 이익이면 잘못되는 걸 방치하고 속으로 즐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재명 의원 옆에는 동지가 있을까요? 아니면 모두 동업자일까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뚜렷합니다. 

 

첫째, 윤석열 탄핵의 기치를 굳게 들고 정치권을 계속 압박해야 합니다. 야권 인사들이 적폐와 타협하자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비판하고 교정해 줘야 합니다. 정치인을 비판하고 압박해 견인하는 건 주권자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둘째, 윤석열과 한동훈은 똑같다는 점을 한시도 잊으면 안 됩니다. 흔한 말로 ‘그놈이 그놈’입니다. 다 똑같은 국민의 적을 두고 누가 더 나은가를 생각하다가는 자칫 적폐들의 술책에 말려들 수 있습니다. 

 

추미애 의원은 16일 CBS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한동훈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민주당으로서 더 좋은 호재인가?’라는 질문에 “호재다 악재다, 이렇게 보면 안 된다. 그런 자들이 여당을 장악하고 용산궁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나라의 비극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런 시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검법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