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총참모부 보도문을 통해 남북을 연결하는 도로와 철길을 완전히 끊고 방어물로 요새화하는 공사를 진행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가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기 때문에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우리 합동참모본부는 “군은 일방적 현상 변경을 기도하는 북한의 어떠한 행동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합참이 말한 ‘현상 변경 반대’, 즉 ‘현상 유지’가 무슨 뜻일까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남북의 도로, 철길을 지금처럼 놔두자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위해 북한의 요새화 공사를 중단하라는 것이지요.
현상 유지를 위한 4가지 방법
합참이 말한 ‘현상 유지’를 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보면 크게 네 가지가 떠오릅니다.
첫째, 남북대화를 재개하고 9.19군사합의 등 남북합의를 복원해 도로, 철길을 온전히 활용하는 것입니다.
도로, 철길로는 사람과 짐이 오갑니다. 다양한 교류·협력 사업을 진행하고 특히 경제 교류를 해야 도로, 철길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로, 철길을 사용해야 하니 북한도 요새화 공사를 취소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남북관계는 완전히 파산한 상황이라서 당장 뭘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분위기부터 조성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9.19군사합의를 복원하고 기존 남북합의를 이행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또 남북 사이의 충돌을 부르는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하고 대북 확성기 방송도 중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북한을 겨냥한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는 것도 효과적일 것입니다.
둘째, 우리가 먼저 도로, 철길 연결 공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미 연결된 도로, 철길을 두고 무슨 연결 공사를 하자는 것인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연결됐다고 다들 여기는 경의선·동해선 도로, 철길은 아직 연결이 안 됐습니다. 2018년 12월 26일 북한 개성역에서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을 했는데 당시 통일부는 “실제 공사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 및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상황을 보아가면서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즉, 착공식만 하고 실제 공사는 하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도로, 철길을 이용하려면 먼저 공사부터 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사를 시작하면 북한도 진정성이 있다고 여기고 요새화 공사를 중단할지 모릅니다.
셋째, 우리 정부가 북한을 압박하고 위협해 요새화 공사를 중단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와 군은 기회만 생기면 북한을 향해 강경 발언을 하고 전쟁 연습과 고강도 화력 시위를 하며 북한을 위협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식으로 북한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넷째, 국제 사회를 움직여 북한을 압박하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그간 여러 국제회의에 참석해 관계를 다져왔습니다. 유엔 회의는 물론이고 G7 정상회의, 나토 정상회의에도 찾아가 목소리를 냈습니다. 또 올해는 우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북한이 공사를 못 하도록 결의안을 채택해 북한을 외교적으로 압박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6자회담처럼 주변국을 모아서 결의문을 발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북한의 요새화 공사를 막을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다 현실성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첫째, 둘째 방법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과 정반대라서 절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국힘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남북관계 발전을 반대해왔고 이 연장선에서 윤석열 정부는 9.19군사합의를 주도적으로 파괴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며 북한 체제 붕괴와 흡수통일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북한을 존중하며 대화와 협력을 하자고 하면 자기를 부정하는 꼴이 됩니다.
셋째 방법은 북한이 우리 군사력을 두려워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우리 군이 자랑하는 현무-5 미사일을 두고도 ‘쓸모’ 없는 무기라고 혹평합니다. 현무-5 미사일의 파괴력이 8톤인데 북한의 방사포 1대의 파괴력이 900톤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군이 아무리 크고 강한 무기를 개발해도 핵무기에는 비교가 안 되는 것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군사력으로 위협하는 방법은 거꾸로 북한이 한 적이 있습니다. 2015년 8월 이른바 ‘목함지뢰 사건’이 터졌을 때 북한은 48시간 이내에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개시한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잠수함의 70%를 출항시켰으며, 최전방 포병을 2배로 늘렸고, 공기부양정 20척을 전진 배치하며, 특수부대를 이동시켰습니다. 긴장한 미국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시키고 B-52 전략폭격기 위력 시위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에게 협상 타결을 압박했습니다. 결국 박근혜 정권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습니다. 그렇게 극적으로 전쟁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이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규모 훈련을 하고 미국의 전략무기가 대거 들어와도 북한이 위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더 센 조치가 필요한데 미국의 전략무기 위력 시위보다 더 센 게 뭐가 있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넷째 방법을 보면 중국, 러시아가 반대할 것이므로 유엔 안보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다만 미국과 일본을 설득해 비슷하게는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결의문이 북한을 움직인 전례가 없습니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도 인정하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북한이 일부 나라들이 모여 발표한 결의문을 보고 압박을 느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 정부는 왜 항의하나
이렇게 보니 우리 군이 말하는 ‘현상 유지’는 불가능합니다. 실천하지도 못할 얘기를 민망하게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우리 정부도 “좋다, 우리도 차단하겠다”라고 했으면 깔끔했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정부가 남북 도로·철도 연결 공사를 하겠다고 하자 당시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지금의 국힘당)은 ‘북한의 남침 경로가 된다’, ‘북한 경제에 좋은 일 해준다’, ‘비핵화 전에는 공사를 하면 안 된다’라며 반대했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반대하더니 이제 와서 북한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는데 반대하는 모습이 모순적입니다.
사실 군사분계선 요새화는 북한만 한 게 아니라 우리 군도 했습니다. 우리 군은 1970년대 후반 높이 5~6미터, 길이 30킬로미터의 콘크리트 장벽을 대전차 장애물로 설치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영구 분단을 노린 장벽이다’, ‘북침용 군사시설이다’며 항의했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방어용이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때는 방어용 장벽 건설이 정당했고 지금은 아니라는 걸까요? 콘크리트 장벽을 먼저 건설했던 우리 정부가 북한에 항의할 이유도, 근거도, 명분도 없어 보입니다.
혹시 우리 정부가 도로·철길로 경제협력을 하려고 한 걸까요? 남북경제협력은 물론이고 북한을 거쳐 중국과 러시아, 유럽까지 육로로 다닐 수 있다면 정말 획기적인 경제 효과를 낳을 것입니다. 철길 옆으로 가스관을 설치하면 값싼 러시아 천연가스를 무진장 들여와 가스비 반값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그런 구상을 하고 있었다면 정말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정책을 보면 그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윤 대통령은 당장 11일 동아시아 정상회의에 참석해서도 “남중국해에서 유엔해양법 협약을 포함한 국제법 원칙에 따라 항행과 비행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라며 중국을 자극했고 “러시아와 북한의 불법적 군사 협력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욱 장기화시키고 있어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북한과 러시아를 비난했습니다. 이 회의에는 중국, 러시아 대표단도 참석했으니 그들 면전에서 적대 발언을 한 셈입니다. 남북경제협력에 관해서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도 중단시킨 게 국힘당 정권이었으니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교류·협력을 바라며 북한의 도로·철길 차단을 규탄한 건 아닌 게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북한의 요새화 공사를 반대하는 걸까요?
남북의 공식 입장을 봅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학 창립 60주년 축하 연설에서 “우리는 솔직히 대한민국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의식하는 것조차도 소름이 끼치고 그 인간들과는 마주 서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으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 15일 광복절 79주년 기념식 경축사에서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되어야 합니다.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자유의 가치를 북녘으로 확장하고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데 우리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북한은 우리와 엮이는 게 싫어서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하는데 우리 정부는 흡수통일을 하겠다며 더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합니다. 남북의 생각이 완전히 반대입니다.
흡수통일 시도는 전쟁을 낳습니다. 북한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우리 체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기 때문입니다. 흡수통일을 하겠다는 것은 결국 북진통일을 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군은 남북 도로·철길을 북진통일을 위한 통로로 생각했는데 북한이 여기를 차단하겠다고 하니 반대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게 아니고서야 북한이 자기 땅에 무슨 공사를 하든 우리 땅으로 넘어오는 것도 없는데 우리가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북한도 요새화 공사를 시작하면서 전쟁 위기가 심각해서 “전쟁 억제와 공화국[북한]의 안전 수호”를 위해 공사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걸 반대하면 결국 전쟁을 하고 싶다는 말밖에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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